지리적, 역사적 근거 History Event
1905년 일본,독도 강제편입
강원도 관찰사 서리가 참정대신에게 올린 울도군수 沈興澤의 보고서와 대한제국 참정대 신의 지령문(1906) 울도군수 심흥택은 이 보고서에서“본군 소속 獨島가”라고하여 독도가 자신이 통치하는 영토임을 밝혀 항의했고, 참정대신은“일본의 獨島領有의說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며 일본측 주장을 항의 비판하였다. 일본은 1904년 2월 러·일전쟁을 일으킨 후, 동해에서 러시아 함대의 동태를 감시하는 해군 망루(望樓)를 독도에 세우기로 하였다. 이 때 마침 나카이(中井)라는 일본 어업가가 독도의 물개잡이 독점권을 독도 소유권자인 대한제국 황제에게 신청하려 하였다. 일본 정부는 독도가 한국 소유 땅임을 알면서도‘무주지’ (주인 없는 땅)라고 전제하면서 1905년 1월 28일 내각회의에서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하였다. 그리고 이름을‘다케시마’(竹島)로 하며 시마네현 행정소관으로 한다고 결정하였다. 그러나 일본은‘독도’가‘한국 영토’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 독도 영토편입이 세계에 알려질 것이 두려워『관보』에 싣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독도는 1905년 1월 28일 이전에, 이미 서기 512년부터 한국 영토로서 한국이라는 주인이 있는‘유주지’였다. 따라서‘무주지’(주인 없는 땅)이기 때문에 독도를 일본에 영토편입한다는 일본 정부의 결정은 국제적으로 인정 받을 수 없는 불법적,무효의 결정이었다. 울도 군수는 1906년 3월 28일에 비로소 일본의 독도침탈 사실을 알고 강원도 관찰사를 통해 중앙정부에 보고했으며, 대한제국 참정대신은 즉각 일본의 불법성을 규탄하였다. 그러나 4년 후인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은 일제에게 병탄되어 버렸으므로, 독도는 온 나라를 되찾을 때 함께 되찾게 되었다.
출처 : 독도연구보전협회

 

17C 말 일본정부, 독도와 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재확인
1696년 1월 일본측이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하고, 일본인의 독도 출어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음을 조선측에 알려온 전달서 일본이 1592~98년 임진왜란을 일으켰을 때, 왜군은 독도를 거쳐 울릉도에도 침략하여 주민을 학살하고 노략질하였다. 이에 주민피살을 막기 위해 조선 조정이 울릉도를 비워두는 공도(空島) 정책을 강행했다. 이 틈에 일본 도쿠가와 막부는 조선 조정 몰래 일본 어부 2가문에게 1618년 울릉도에 건너가는『죽도도해면 허』(竹島渡海免許)와 1656년 독도에 건너가는『송도도해면허』(松島渡海免許)를 내주었는데 이것은 외국에 건너갈 수 있는 허가장이었다. 이에 울릉도에 건너온 일본 어부들과 안용복(安龍福) 등 조선 어부들 사이에 1693년 큰 충돌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의 대마도 도주가 중심이 되어 울릉도(및 독도)를 일본 영토로 만들려는 외교 분쟁을 일으켰다. 수년간 논쟁이 전개되었으나 조선 정부의 강경한 대응에 일본도 굴복하여 1696년 1월 도 쿠가와 막부 관백(關白, 집정관)은 울릉도(및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재확인하고 일본 어부들의 울릉도(및 독도) 고기잡이를 엄금했으며, 『죽도도해면허』와『송도도해면허』를 취소하였다. 동래 출신 어부 안용복도 이 때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기 위해 활동했다.
출처 : 독도연구보전협회

 

19C 일본 메이지 정부의 공문서, 독도와 울릉도를 한국영토로 확인
일본 외무성과 태정관이 1869년에 조사사항으로 지령한 <獨島松島朝鮮附屬二相成候始末>의 항목과, 그에 대한 일본 외무성 관리들의 復命내용 일본 외무성과 태정관이 지령한 이 조사항목은 1869~1870년에 일본 정부가 독도를 조선부속령으로 확인한 명백한 실증자료이다.( 《日本外交文書》수록) 일본에서 1868년 1월 도쿠가와 막부정권이 붕괴되고 새 메이지(明治)정부가 수립되자, 일본 새 정부의 태정관(총리대신)과 외무대신은 1869년 12월 외무성 고관들을 조선에 파견하여 14가지 항목에 대한 내탐 조사를 명령하였다. 그 가운데「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가 조선 부속(朝鮮附屬)으로 되어 있는 시말」을조사하라는 명령항목이 있었다. 당시 일본 최고 국가기관인 태정관(太政官)과 외무대신은 울릉도와 독도가‘조선부속영토’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에 대한 내탐보고서가 1870년의「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 」이고, 이는 일본 외무성이 1930년대에 편찬한『일본외교문서』제3권에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울릉도와 독도가 역사적으로 한국 영토임을 일본도 공지 공인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출처 : 독도연구보전협회

 

연합국, 1946년 1월 독도를 한국에 반환하는 군령 발표
연합국 최고사령부가 SCAPIN 제677호의 부속지도로 작성해서 韓國과 日本의 領土를 구 획한 지도 獨島를“TAKE”로 표시하면서 韓國領土로 부속시켰다. 일본이 1945년 8월 15일 연합국에 항복한 후, 연합국은 동경에 연합국 최고사령부를 설치하고 구일본제국이 이웃나라 영토를 침략하여 빼앗은 모든 영토들을 원주인에게 반환해주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1946년1월 29일 연합국최고사령부지령(SCAPIN) 제677호의 군령을 발표하여 한반도 변의 제주도·울릉도·독도(리앙쿠르 도) 등을 일본 주권에서 제외하여 한국에 반환시켰다. 연합국최고사령부는 이어서 1946년 6월 22일 SCAPIN 제1033호를 발표하여 일본 어부들의 독도와 그 12해리 수역에 접근하는 것을 엄금하여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거듭 명백히 하였다. 이 군령들은 아직도 국제법적 효력을 갖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과 동시에 주한미군정(연합국)으로부터 한반도와 독도 등 부속도서들을 영토로 인수하였고, 1948년12월 12일 국제연합으로부터 그 영토와 주권을 국제적으로 공인받았다.
출처 : 독도연구보전협회

 

유엔군, 독도를 한국 영토에 포함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유엔군이 한국 영토를 영공에서 방위하기 위해 1950년 설정해서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한국방공식별구역』(韓國防空識別區域: KADIZ) 유엔군의 KADIZ는‘독도’를 한국 영토로 확인하여 방위하고 있다. 미국 공군이 1948년 6월 30일 독도 부근에서 폭격 연습을 한 일이 있고, 그후 한국전쟁 기간에 미·일 합동위원회에 의해 독도가 미공군 연습기지로 선정되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일본 정부는 이 점을 지적하며 연합군이 독도를 일본 영토로 간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다르다. 대한민국 정부가 이에 항의한 바, 미국 공군사령관은‘독도’는 미국 공군 연습기지에서 제외되었다는 회답을 1953년 2월 27일자로 대한민국 정부에 보내왔다. 또한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유엔군과 미국 태평양 공군사령관은「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 Korean 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을 설정하여 한국 영토의 상공 방어구역을 정해서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KADIZ 안에독도를 포함시켜 독도를 한국 영토로 방어하고 있다. 유엔군 공군은 독도를 한국영토로 판정하여 독도 상공을 KADIZ 안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유엔군 공군도 독도를 한국 영토로 지키고 있음을 명백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출처 : 독도연구보전협회